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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의 강자 후백제, 전주를 수도로 삼다 - 후백제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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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14 Jul 2020

#견훤후백제 #해양활동과수도전주 #윤명철KoreanHistory 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후백제의 발전과 해양활동 능력 * 견훤의 후백제 건국 신라는 9세기에 들어서면서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떨어지고, 지방을 통제하는 기능을 상실해갔다. 또한 거듭되는 실정과 계속되는 흉년으로 경제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백성들은 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권력 쟁탈전에서 소외당한 세력들은 재야세력으로 힘을 기르고, 지방에서 태동한 자생적인 호족세력들이 발호했으며, 특히 해안지방에는 상업을 바탕으로 한 경제력과 강한 군사력을 갖춘 군소 해양세력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이 시대 가장 강력한 해양세력은 견훤(甄萱)이었다. 삼국사기에는 견훤이 경상도 상주사람이고, 본래의 성은 이씨였으며, 신라의 중앙군으로 출발하여 서남해에서 해양방어를 맡은 군인이었다. 그는 백성들의 불만과 옛 백제땅이라는 민심을 활용하여 달포 사이에 규모가 5천 여 명에 달했다. 892년에는 자신을 왕이라 칭하면서 ‘후백제’를 건국했고, 900년에 완산주(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정한 후에 후삼국 통일전쟁에 뛰어 들었다. 경상도 산골 출신의 하급군인이 후백제를 건국하고 발전시킨 힘과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견훤은 강력한 해양활동능력을 보유하고, 항구도시이며, 농업도시, 그리고 방어력이 뛰어난 전주를 수도로 삼았다. *후백제의 수도인 전주는 내륙 항구도시 전북 해안지역은 고대에 남북을 연결하는 항로의 중계지 역할을 하였으며, 황해를 건너온 중국 남방문화가 유입되는 입구 역할을 했다. 변산반도의 죽막동 유적에서 발굴된 중국계, 왜계의 유물들은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동진강을 통해서 정읍·김제·고창 등 평야지대로 쉽게 연결되고, 군산지역을 통해서는 금강 하구로 연결된 하계망을 이용해서 전북과 충남 일대의 깊숙한 곳까지 교통이 가능하다. 백제 등이 사용했던 만경강은 ‘한천(漢川)’을 통해서 전주 시내까지 연결된다. 전주는 이른바 해륙교통과 수륙교통의 합류점이었고, 해양능력의 중요성을 간파한 견훤은 전주의 잇점을 파악하고 수도로 택한 것이다(윤명철, 한민족의 해양활동이야기2 ). 그런데 놀라웁게도 전주사람들은 전주가 40년 가까이 후백제의 수도였으며, 사신선들이 발착했던 국제적인 항구도시였던 사실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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